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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식자재마트, 골목상권 포식자로 등극했다

# 겨울 한파가 한창이던 올 1월 16일, 충북 청주시 수곡동 두꺼비시장 상인들이 거리로 나왔다. 상인들은 현수막과 팻말을 높이 들며 구호를 외쳤다. "소상공인 보호하라, 식자재마트 물러가라." 이들이 생업을 뒤로하고 머리띠를 두른 이유는 두꺼비시장과 불과 250여m 떨어진 곳에 식자재마트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 부산시의회는 지난 11일 제290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골목상권보호지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에는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식자재마트가 출점할 경우 대기업 대형마트와 동일하게 상권영향평가 등을 받도록 했다.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골목상권과 갈등을 빚고 있다. 벌써 수년째다. 지역마다 식자재마트 점포 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동일한 규제를 요구하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정부보다 먼저 식자재마트의 무분별한 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식자재마트가 골목상권의 포식자로 등장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어찌된 일인지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여전히 대책마련을 외면하고 있다.

◆소형 슈퍼마켓 감소, 중형은 증가 = 식자재마트는 점포면적 990㎡ 미만의 중형슈퍼마켓을 일컫는다. 대부분 661~900㎡ 사이다. 대기업의 기업형슈퍼마켓(SSM)보다 규모만 작을 뿐 판매물품이 비슷하다. 전국에 6만개 정도가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슈퍼마켓 규모별로 비교하면 소형은 줄어들고 있지만 중형인 식자재마트는 호황을 누리며 성장하고 있다. 유통학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연매출 100억원 이상 식자재마트는 전체의 0.5%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출액 비중은 전체의 24.1%를 차지했다. 점포수가 1,0%인 매출액 50억~100억원 마트의 매출액 비중도 14.4%였다.

반면 소형 슈퍼마켓은 감소 추세에 있다. 5억원 미만의 영세한 소형 슈퍼마켓 점포수는 83.7%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매출액은 17.6%에 그쳤다. 5년전과 비교하면 매출액은 8.1%, 점포수는 4.6% 줄었다. 매출 50억원 이상의 식자재마트들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기업형 식자재마트의 성장세는 무섭다. 2019년 기준으로 기업형 식자재마트 선두주자는 장보고식자재마트로 매출 3164억원을 기록했다. 우리마트(1964억원) 윈플러스마트(1749억원) 트라이얼코리아(1232억원) 세계로마트(989억원) 등도 대표적인 기업형 식자재마트다.

이들의 시장 확장은 매출액 증가에서 확인된다. 대구를 중심으로 13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보고식자재마트 매출은 2013년 1576억원에서 6년 만에 2배 이상 커졌다. 우리마트는 2013년(370억원)과 비교하면 5배 이상 증가했다. 원플러스도 4배 이상, 일본계 슈퍼마켓인 트라이얼코리아도 73.5% 늘었다.

◆규제 사각지대서 활개 = 유통업계에서는 2012년부터 식자재마트가 본격 확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 대형마트와 SSM 규제가 강화되자 대기업들이 움츠러들었다. 이 사이에 규제를 받지 않는 중형규모로 좋은 위치에 점포를 늘렸다.

식자재마트 급성장은 규제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강화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반경 1km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정하고 3000㎡ 이상 면적을 가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신규 출점을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월 2회 휴업을 의무화하는 등 영업시간도 제한하고 있다.

반면 식자재마트는 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면적이 작아서다. 3000㎡ 이상 규모의 대형마트가 아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등 같은 유통대기업의 가맹점이나 직영점도 아니다.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식자재마트는 영업하기 좋은 곳이면 어디든지 늘렸다. 전통시장 안에 입점해도 규제를 받지 않았다. 서울 우림시장 입구에 식자재마트가 영업하고 있는 이유다. 아현시장 인근 1km 반경 안에 세군데의 식자재마트가 있다.

규모경제를 앞세운 식자재마트는 골목상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식자재마트가 들어서면 품목이 겹치는 기존 상인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대구·경북지역 전통시장 138개소 반경 1km 이내에 위치한 식자재마트는 150여개였다. 이들 식자재마트 개설로 전통시장의 연평균 매출 감소액은 60억5900만원으로 추산됐다.

◆지자체 나서 진입 제한 = 지방자치단체들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지킴이로 나섰다. 식자재마트의 무분별한 점포 개설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대구시가 최초로 규제를 제도화했다. 대구시는 2015년 '서민경제 특별진흥지구 지정·운영 조례'로 전통시장 1㎞ 내에 식자재마트 진입을 제한했다. 조례에는 영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자는 구청에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 11일 열린 임시회에서 '골목상권보호지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는 식자재마트를 포함한 준대형 점포를 대상으로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상생발전을 위한 권고사항을 정했다. 점포 개설자에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또 개설지역과 시기를 예고하도록 했다.

부산시의회 조례는 장보고식자재마트의 부산진출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막기위해 긴급하게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서도 식자재마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형 식자재마트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다수 포함되면서 전통시장이 생존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식자재마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식자재마트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미적대는 중기부 = 소상공인들은 식자재마트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회장 임원배)와 전국상인연합회(회장 하현수)는 최근에 최승재 의원(국민의힘, 비례대표)에게 식자재마트 문제점을 전달하고,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임인배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식자재마트는 규모경제와 자본력, 24시간 영업 등을 앞세워 골목상권 소비자를 빨아들여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대부분 소상공인들은 식자재마트도 월 2회 휴무와 영업시간 제한, 품목 제한 등 대형마트에 준하는 수준의 영업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중기부는 지난해 국감 이후 문제해결에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박 장관이 약속했던 식자재마트에 대한 정의는 논의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소상공인단체장은 "국회나 중기부에서는 식자재마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20대 국회에서 무산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통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최승재 의원은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만큼, 필요한 규제는 강화하되, 불합리한 규제는 개선하는 등 유통산업 환경변화에 부합하는 정책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에스비즈뉴스  themomma@themom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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